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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renaline · 성장 & 배움 · 깊이 읽기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행복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행복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꿈꾸는 그 삶—멋진 직업, 단단한 몸, 깊고 안정적인 관계—을 가진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행복을 쫓은 게 아니라, 기꺼이 어떤 고통을 택할 것인지를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대입 수험생 시절, 우리는 ‘좋은 대학’이라는 목적지만 바라봤다. 직장인이 된 뒤에는 ‘연봉 인상’, ‘승진’, ‘부업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그 꿈들 중 얼마나 많은 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는가? 그리고 이루어진 것들은—과연 어떤 대가를 치른 사람들의 손에 쥐어졌는가? 오늘 에듀레날린은 당신에게 불편하지만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던진다. “당신은 어떤 고통을 원하는가?”

행복을 원한다는 말은, 사실 아무 말도 아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한 말이니까. 하지만 조금만 더 파고들면 이 문장은 놀라울 정도로 텅 비어 있다. 작가 마크 맨슨(Mark Manson)은 그의 에세이 「The Most Important Question of Your Life」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모두가 멋진 몸을 원하지만, 체육관에서 매일 한 시간씩 땀을 흘리는 고통을 원하는 사람은 훨씬 적다. 모두가 성공적인 사업을 꿈꾸지만, 70시간의 노동 주간, 불확실성의 공포, 직원을 해고해야 하는 순간의 무게를 감당하고 싶은 사람은 드물다.
한국 사회를 예로 들어보자. 수많은 20대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원고지를 매일 채우는 고독함, 출판사의 수십 번 거절, 독자 없는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올리는 지루함—이 과정을 실제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은 얼마나 될까?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어떤 고통을 기꺼이 선택하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맨슨의 핵심 주장이다. 당신이 삶에서 얻는 것은 원하는 좋은 감정이 아니라, 그 좋은 감정을 얻기 위해 기꺼이 감수하려는 나쁜 감정에 의해 결정된다. 달리 말하면, 당신이 어떤 결과를 원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과정의 고통을 즐길 수 있는지가 당신의 삶을 빚어낸다.

“What pain do you want in your life? What are you willing to struggle for? Because that seems to be a greater determinant of how our lives turn out.”
— Mark Manson, 「The Most Important Question of Your Life」
뇌도 근육처럼 찢어져야 자란다: 학습 고통의 과학
헬스장에 처음 간 날을 기억하는가? 이틀 뒤 팔을 들어 올리기도 힘든 근육통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불쾌한 통증은 사실 근섬유가 미세하게 손상되고 재생되면서 더 강해지는 과정의 증거다. 고통 없이는 성장도 없다—이것은 근육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뇌도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새로운 개념을 배울 때, 익숙하지 않은 수학 문제와 씨름할 때, 처음 보는 언어의 문법 규칙을 머릿속에 새겨 넣으려 할 때—뇌의 신경망은 물리적으로 재구성된다. 뉴런들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형성되고, 기존 연결은 강화되거나 가지치기된다. 신경과학에서는 이를 ‘시냅스 가소성(synaptic plasticity)’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과정은 결코 편하지 않다. 모르는 것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답답함, 반복해도 외워지지 않을 때의 좌절감—그것이 바로 뇌가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다.
한국 교육 현장에서 흔히 보이는 장면이 있다. 학생들은 모르는 문제를 5분도 붙잡지 않고 해설지를 펼친다. 이해가 되는 것 같은 착각—이른바 ‘유창성 착각(fluency illusion)’—에 빠진다. 하지만 뇌가 실제로 강해지는 순간은 그 5분의 불편함 안에 있다. 씨름하는 시간을 생략하면, 근육통 없이 헬스장에 앉아만 있는 것과 다름없다. 학습의 고통을 피하는 것은, 성장 자체를 피하는 것이다.
핵심 통찰
당신이 삶에서 얻는 것은, 원하는 좋은 감정이 아니라—그 좋은 감정을 얻기 위해 기꺼이 감수할 나쁜 감정에 의해 결정된다. 뇌의 신경망이 재구성되는 것도, 근육이 강해지는 것도, 관계가 깊어지는 것도 모두 같은 원리다. 고통을 피하면 결과도 피해진다.
고통을 고르는 것이 곧 삶의 방향을 고르는 것이다
직업을 선택할 때 우리는 보통 ‘어떤 일이 좋아?’, ‘연봉이 얼마야?’를 묻는다. 그런데 맨슨은 전혀 다른 질문을 권한다. “이 일의 어떤 고통을 나는 즐길 수 있는가?” 개발자가 되고 싶다면, 밤새 에러 메시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간을 견딜 수 있는가? 유튜버를 꿈꾼다면, 구독자 100명짜리 채널을 6개월간 운영하는 무명의 시간을 버틸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결과는 선택할 수 없지만, 과정은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과정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 과정에 수반되는 고통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내가 어떤 종류의 힘듦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알면, 흔들리지 않는 방향이 생긴다. 누군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SNS 속 타인의 성공이 눈에 밟혀도—내가 선택한 고통의 길 위에 있는 한,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고통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결과만 보고 길을 선택한 사람들. 처음 몇 달은 열정이 넘친다. 하지만 현실의 마찰이 시작되면—반복되는 실패, 예상치 못한 지루함, 인정받지 못하는 시간—버티지 못하고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또 다른 화려한 목적지를 향해 떠난다.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직업에서 저 직업으로, 이 취미에서 저 취미로 표류하는 이유다.

수치로 보는 인내와 성장
10,000
시간의 의도적 연습이 전문성을 만든다는 연구 추정치 (Ericsson et al., 1993). 핵심은 ‘편한 반복’이 아니라 불편한 경계에서의 훈련.
66일
새로운 행동이 자동화(습관)되기까지 걸리는 평균 추정 기간 (Lally et al., 2010). 처음 2주가 가장 고통스럽다.
~40%
한국 직장인 중 현재 직업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추정치, 복수 취업 조사 평균). 고통의 종류를 잘못 선택한 결과일 수 있다.
‘원하는 것’이 아니라 ‘버틸 수 있는 것’이 진짜 소명이다
소명(vocation)이라는 단어는 종종 낭만적으로 쓰인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미묘하게 다르다. 좋아하는 일도 반복되면 지루해지고, 의미 있다고 생각한 일도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회의감이 온다. 그 회의감과 지루함이 찾아왔을 때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가—이것이 소명과 단순한 관심사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번아웃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처음에는 일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고통이 커졌고, 그 고통이 ‘잘못된 신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고통은 잘못된 선택의 신호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당신이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는 과정의 마찰음일지 모른다. 차이는 이것이다. 이 고통이 성장을 만드는 마찰인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잘못된 방향에서 오는 신호인가. 그것을 구분하기 위해서도, 먼저 ‘나는 어떤 고통을 기꺼이 원하는가’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Phillip의 생각
한국에서 교육과 커리어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좋아하는 것을 찾아라’는 조언을 너무 가볍게 소비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내가 그것을 위해 어떤 종류의 고통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는 대부분 생략된다.
입시 제도 아래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정해진 고통’만을 경험했다. 수능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향해 모두가 같은 종류의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 시스템을 벗어나는 순간—대학 입학 이후, 혹은 첫 직장 이후—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는다. 이제는 어떤 고통을 골라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학원 커리큘럼이 없고, 수능 D-day가 없고, 선생님이 대신 방향을 잡아주지 않는다.
에듀레날린이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학습의 고통을 피하지 말고, 올바른 고통을 선택하는 안목을 기르자는 것. 근육이 찢어져야 다시 붙으며 강해지듯, 뇌가 모르는 것과 씨름하는 불쾌한 시간이 새로운 신경망을 만들고 실력을 쌓는다.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당신은 올바른 방향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너무 편하다면, 당신은 아직 성장의 영역 바깥에 있는 것이다.
오늘 당신에게 묻고 싶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 일, 관계—그 안의 고통을 당신은 기꺼이 원하는가?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아니면 ‘힘들지만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가. 그 차이가 당신의 진짜 방향을 말해줄 것이다.
결과는 고통의 선택이 낳은 부산물일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결과를 향해 달려간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대개 자신이 선택한 과정을 남들보다 더 오래, 더 깊이 즐기거나 견뎌낸 사람들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의 파트너들은 수십 년간 새벽과 주말을 반납했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은 청중이 없는 연습실에서 수만 시간을 보냈다. 그들에게 결과는 그 시간의 부산물이었다.
이것은 ‘노력하면 된다’는 진부한 말이 아니다. 어떤 노력이냐가 핵심이다. 당신이 정말로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고통을 선택했다면, 그 노력은 지속된다. 반대로 결과에 눈이 멀어 억지로 선택한 과정 위에서는 첫 번째 장벽에서 무너진다. 지속 가능한 성장의 연료는 열정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솔직한 합의다.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질문들
- 내가 원하는 결과 목록을 적고, 그 결과에 수반되는 ‘과정의 고통’을 각각 옆에 써보기. 예: ‘작가 되기’ → ‘독자 없는 기간, 글쓰기 근육이 없는 고통, 수십 번의 퇴고’. 그 고통을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가?
- 지난 한 달간 내가 ‘편해서’ 선택한 것과 ‘불편하지만 선택한 것’을 구분해보기. 불편하지만 선택한 것이 거의 없다면, 나는 성장의 영역 바깥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 지금 하고 있는 학습이나 일에서, ‘이 고통은 성장의 마찰인가, 잘못된 방향의 신호인가’를 구분해보기. 판단 기준: 고통 뒤에 작은 진전이 있는가? 아니면 방향 자체가 나를 소모시키는가?
- 한 가지를 골라 ‘불편함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늘려보기. 모르는 문제를 해설 없이 10분 더 붙잡기, 쓰기 싫은 글을 500자 더 쓰기, 회피하던 피드백을 직접 요청하기.
- ‘나는 어떤 고통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오늘 저녁, 혼자 30분 동안 진지하게 써보기. 이것이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실천이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질문은 대개 거창하지 않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고통을 원하는가”—이 한 문장이, 지금 당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좋은 감정만 좇는 삶은 모래 위의 집이다. 하지만 기꺼이 선택한 고통 위에 세워진 삶은,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다.
당신은 오늘, 어떤 고통을 선택하겠는가.
출처 및 참고
- Mark Manson, 「The Most Important Question of Your Life」 — markmanson.net
- Ericsson, K. A., Krampe, R. T., & Tesch-Römer, C. (1993). The role of deliberate practice in the acquisition of expert performance. Psychological Review, 100(3), 363–406.
- Lally, P., van Jaarsveld, C. H. M., Potts, H. W. W., & Wardle, J. (2010). How are habits formed: Modelling habit formation in the real world.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40(6), 998–1009.
- Kandel, E. R. (2001). The molecular biology of memory storage: A dialogue between genes and synapses. Science, 294(5544), 1030–1038. (시냅스 가소성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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